본문 바로가기

서평

[서평]바깥은 여름, 책에서 느낄 수 있는 사계절

김애란 작가의 소설 바깥은 여름은 여러 단편 소설을 엮은 책이다. 소설책에는 별 관심이 없던 내가 첫 표지에 이끌려 이 책을 선택하였는데, 첫 단편 부터 내 마음을 후벼파는 내용이 있었다.

 

"당시 이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도화

혼자 어른이 돼가는 과정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일이었다. 도화의 말투와 표정, 화제가 변하는 걸, 도화의 세계가 점점 커져 가는 걸, 그 확장의 힘이 자신을 밀어내는 걸 감내하는 거였다."

<바깥은 여름> 중 건너편 90p

 주인공인 도화는 노량진에서 경찰공무원 준비를 하던 여성이었고, 이수는 공무원 준비를 2년째 하던 남자였다. 둘은 공짜 밥을 주는 교회에서 만나 연애를 시작했고 2년만에 도화는 합격, 이수는 포기라는 선택을 하여 동거를 시작한다. 동거 후 2년, 변변찮은 직장에 다니는 것 같았던 이수는 도화 몰래 공무원준비를 하고 있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도화는 그전부터 느꼈던 권태를 이야기하며 집을 비워줄 것을 요구한다. 

 이 짧은 소설을 보면서도 쉽게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한국적인 내용으로 주를 이루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도화와 이수가 사는 집이 가격이 올랐으니 집을 비워달라는 집주인의 말과 도화몰래 전세를 반전세로 낮추고 몇개월치 월세를 떼고 보증금을 받아간 이수, 이를 몰랐던 도화는 집주인과의 대화로 그 사실을 알게 되는 것부터 정말 한국스러웠고, 노량진이라는 곳이 내가 가봤던 곳이었기에 수산시장에서 돔을 사서 저녁을 먹는 둘의 모습과 왁자지껄한 수산시장과 횟집 모습, 그 풍경이 너무나 내 얘기 같았고 내 친구들 이야기를 듣는 듯했다. 

 가장 하이라이트 였던 것은 이수가 도화에게 매달리는 장면, 도화는 이수가 변변찮은 직장에 다닌다는게, 돈을 얼마 못번다는게, 누구에게 부끄럽다는게 아니라며 자신의 속에 있던 무언가가 없어졌다며 이별을 고한다. 그 모습이 정말 비참했고, 그냥 정떨어졌다는 말을 그렇게 한다는게 조금 세련된 표현인 것 같으면서도 구차한 변명 같았다. 하지만 나였어도 2년이나 기다려주는, 수험생 시절까지 4년을 기다려준 여자라면 그정도 됬을 땐 헤어질만 하다고 생각했다. '인내심이 강한 도화'라고 표현되는 소설속에서 도화는 정말 이별의 감정을 묵묵하게 표현하고 있다. 경찰 공무원으로 교통정보를 전달할 때도 노량진이라는 글자에 멈칫하는 걸로 보아 도화는 아직 사랑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하지만 아쉬운 감정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내가 더 비참한 것처럼 느꼈는지도 모른다. 차라리 정떨어져서 정말 보기 싫어서 헤어지자고 했으면 몰라도 이런 저런 상황과 감정이 뒤섞여 그런 판단을 한 것 같아 참 씁쓸한 모습이었다.

 

바깥은 여름을 보며 우리나라의 정서와 맞다고 생각한 장면이 하나더 있었는데 그건 강아지와 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노찬성과 에반이라는 작품이었다.

"머릿속에 난데없이 '용서'라는 말이 떠올랐지만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찬성이 선 데가 길이 아닌 살얼음판이라도 되는 양 어디선가 쩍쩍 금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깥은 여름> 중 노찬성과 에반

 '노찬성과 에반'은 늙은 유기견 에반과 고속도로 휴게소 근처 시골에 할머니와 함께사는 노찬성이라는 어린아이가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이 된다. 담배를 피우기 전 '저를 용서하십시오 하느님' 이라고 속삭이는 할머니에게 어린 찬성은 할머니에게 용서라는 게 무엇인지 묻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평범해 보일지 모르는 이 단순한 장면이 에반을 만나며 큰 의미를 갖게 된다. 우연히 누가 길가에 버린 유기견을 본 찬성은 터닝메카드에 나오는 캐릭터인 에반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강아지를 돌보며 따듯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늙은 노견이었던 에반은 얼마 안가 아픈 모습을 보이고, 에반을 치료해주고 싶은 찬성은 동물병원에서 치료에 필요한 것이 돈이란 걸 알게 되었다. 전단지를 돌리며 큰 돈을 벌게 된 찬성은 스마트폰 속의 터닝메카드에 매료되어 치료비를 핸드폰에 쓰게 되고, 에반은 찬성이 한눈 판 사이 길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 작품을 보면서 가장 먼저 와닿았던 것은 찬성이 어린아이같은 마음에서 점점 어른으로 바뀌는 과정이 에반과의 관계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맨 처음엔 치료비와 차비만 남기고 모두 에반의 치료를 위해(그것이 안락사인 것인지도 모르고) 쓰려고 했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돈이 남는 것을 보고 핸드폰에 유심을 사고 터닝메카드 케이스를 사고, 터닝메카드 영상을 보고, 점점 에반에 대한 마음은 식어간다. 뭔가 에반이 귀찮다는 건 아닌데도 마음이 딴 곳으로 새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안타까우면서도 인생을 저렇게 배우기도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찬성이 느끼는 용서는 어떤 표현이었을까? 길가에 버려진 포대자루에서 새어나오는 피를 보며 에반이 스스로 차에 뛰어들어 죽은 것이라고 추측하는 찬성. 자신이 돈을 허투루 쓴 것 같아 에반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데 용서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 것 같다. 그렇게 순수했던 마음에 쩍 쩍 금이 가면서 찬성도 현실이라는 무서움을 자신도 모르게 깨달았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바깥은 여름을 통해 왜 이 책의 제목이 바깥은 여름인지 추측해볼 수 있는 작품을 소개할까 한다.

"마음속으로 '나는 공짜를 바란 적이 없다'고 중얼거렸다. 왕왕거리는 비행기 소음 사이로 누군가 내게 "더블폴트"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바깥은 여름> 중 풍경의 쓸모

풍경의 쓸모는 계약직교수인 주인공이 어머니의 환갑 기념으로 아내와 함께 놀러간 태국 여행에서 날씨와는 다른 차가운 현실을 스마트폰을 통해 듣게 되는 스토리를 스노우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누구에게나 현실은 고달프고 힘든 상황인데 그걸 스마트폰으로 접하고 겪게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치 우리들 이야기를 보는 것과 같다. 주인공은 대학교수가 되기위해 곽교수의 치부를 덮어주는 모습까지 보이고, 사별하신 아버지와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옛정때문에 돈을 빌려주는 모습을 보이는데도 현실이 보여주는 반응은 차갑기 그지 없다. 하지만 태국여행을 하며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스마트폰 카메라에 팝업알림으로 오는 소식에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어야 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공감이 많이 되었다. 

<바깥은 여름>의 의미는 우리는 여름같은 따사롭고 행복한 햇살을 맞으며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을 사는 우리는 겨울 같이 차가운 빙판길을 걷고 있고 냉정을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렇다면 풍경의 쓸모는 왜 풍경의 쓸모일까? 풍경, 즉 태국에 와있는 여름이라는 풍경이 대학교수 지원 실패, 아버지의 새엄마 부고 소식이라는 차가운 진실을 더 비극적으로 대조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쓴 제목이 아닐까라고 나는 생각한다. 

 더욱이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마치 나와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 내 친구들 중의 한 명이 겪었던 사실같은 소설 속 이야기를 보며 공감이 많이 됬다. 김애란 작가의 이전 책, 그리고 신작을 더 찾아서 깊이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